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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일 특별 새벽 기도회 교재(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5-11-14 05:40:03
조회수 1,798 분류 일반 

- 20일 특별 새벽 기도회 -


■ 기간 : 2005년 11월 4일(금) - 23일(수)
■ 주제 : "그리스도를 본받아"
■ 기도제목
1. 고3 대입 수험생을 위하여
2.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기 위하여
3. 11월까지 한 사람 이상 전도
4. 교회 건축 위하여
5. 나라와 민족 위하여


■ 교재 / 그리스도를 본받아!(THE IMITATION OF CHRIST)


1. 저자 : 토마스 아 켐피스(켐펜의 토마스∙Thomas a Kempis)
2. 1380년 독일 켐펜에서 출생
1406년 성 어거스틴 수도원에 입회
1413년 사제가 됨
1448년 수도원 부원장
1425년-1439년 성경 필사
1471년 92세로 별세
■ "그리스도를 본받아" 내용
• 제1권 영적 삶을 위한 권면
• 제2권 내면의 삶에 대한 권면
• 제3권 내적 위로에 대하여
• 제4권 성찬식에 대한 권면



(11월 4일)


* 제1권 영적 삶을 위한 권면

제 1 장 그리스도를 본받음과 세상 생활의 헛됨

1. 주님께서는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처하지 않을 것”(요 8:12)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온갖 어두운 마음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보여 주신 삶과 그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를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는 데 초점을 맞추고 이를 깊이 묵상하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2.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 세상의 어떤 성인의 가르침보다도 훨씬 뛰어난데, 예수님의 영을 받은 자는 누구든지 그 가르침 속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스런 만나(계 2:17)를 얻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듣기는 해도, 그 말씀에 감화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예수님의 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롬 8:9).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고 그 풍성함을 맛보고자 한다면,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삶과 온전히 일치하도록 힘써야 한다.
(계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3. 만일 겸손하지 못해서 성삼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면, 삼위일체에 대한 학문적 토론이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진리를 깨닫게 하는 무슨 비밀스런 말을 한다고 해서 거룩하게 되거나 의롭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덕스런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다. 나는 삼위일체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기보다는 오히려 통회 자복하는 심령을 가지고 싶다.
성경에 능통하고 철학자들의 교훈을 다 섭렵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지 못한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고전 13:2)? 헛되고 헛될 뿐이다(전 1:2).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만 섬기는 일(신 6:13) 외에는 모든 것이 다 헛되다. 그러므로 가장 고상한 지혜는 이 세상을 분토와 같이 여기고 영원한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전 1:2) "전도자(傳道者)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신 6: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4. 잠시 후면 사라져 버릴 부귀富貴를 좇으며 그것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삶은 헛된 삶이다. 명예를 추구하고 출세를 하려고 애쓰는 것 또한 헛되며, 육체의 욕망을 순간적인 기쁨을 채우려 애쓰는 것(갈 5:16)도 헛되다. 결국 헛된 일들을 따라 살다가 세상의 삶이 끝난 후에 사람은 누구나 무서운 심판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저 오래 살기를 원하면서도 선하게 살고자 힘쓰지 않는 것도 헛된 일이요, 현세의 삶만 생각하고 곧 다가올 내세의 삶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헛된 일이다. 잠시 있다가 없어져 버릴 것들만 사랑하려 하고 영원한 기쁨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는 것 역시 헛되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5.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며 귀는 들어도 차지 못한다”(전 1:8)는 말씀을 늘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만 사랑하는 마음을 돌이켜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 감각적인 본능에 따라 살면 자기의 양심을 더럽히게 되고 하나님의 은총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전 1: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제 2 장 자기 자신을 낮춤

1. 사람은 누구나 지식에 대한 욕구(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제1권 제1장)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서 지식을 소유하게 된다면 그 지식이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면서 천체의 별(성 어거스틴의 『참회록』, 제5권 제4장)에 대한 지식을 오만하게 자랑하는 천문학자보다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겸손한 농부가 훨씬 낫다.
자기 자신을 올바로 안다면 스스로를 그렇게 대단하게 여기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칭찬에도 으쓱대지 않을 것이다. 비록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고 있다 해도 내게 사랑이 없다면(고전 13:2)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가진 모든 지식이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2. 지나칠 정도로 지식을 추구하는 지식 욕구에 재갈을 물리라. 그것들은 혼란만 가져다주며 망상에 사로잡히게 할 뿐이다. 좀 배웠다는 사람들은 자기가 똑똑하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고 애쓰며 또 그렇게 인정받기를 원한다(고전 8:1). 그러나 실상 우리 영혼을 구하는 데에는 그다지 유익하지 못하거나 전혀 유익이 되지 못하는 지식도 매우 많다.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 관계없는 것에 마음을 두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다. 말을 많이 하고 청산유수추럼 잘한다고 해서 영혼이 만족함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한 행실의 삶이 우리의 마음을 기쁨 가운데로 인도하며, 또한 깨끗한 양심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한다.
(고전 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3. 지식의 넓이와 깊이가 더할수록 삶이 더욱 거룩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지식의 잘못된 사용으로 인해 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자랑하지 말라. 오히려 그러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더욱 근신해야 한다.
4. 자신이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고 또 그 지식이 온전한 것같이 여겨지겠지만, 실상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들이 셀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고(롬 12:16) 오히려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성경을 보면 지식에서나 행실에서 우리보다 나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을 남보다 낫게 여길 수 있겠는가? 진정으로 무엇인가 배우기를 원하고 그 지식에서 유익을 얻고자 한다면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않기를 원하며(성 베르나르의 『수도원 크리스마스 설교집』의 세 번째 설교 ‘무명으로 있기를 원하라’)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겨 존경받는 것을 피하도록 하라.
(롬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5. 자기 자신을 올바로 알고 스스로 낮추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도 유익한 가르침이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기고 다른 사람을 높이는 것은 정말 위대한 지혜이며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하거나 중대한 과실을 범하는 것을 보았을 때, 자기 자신은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추켜세우지 말라. 우리도 언제 그러한 과실을 범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연약하지 않은 존재는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자기 자신이 남들보다 더욱 연약한 존재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11월 5일)


제 3 장 진리의 가르침

1. 이해하기 힘든 상징적인 어떤 비유(민 12:8)나 지나가는 말을 통해 진리를 깨닫지 않고, 진리 자체의 가르침으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시 94:12).
우리의 사고 체계나 인식 체계로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기는 힘들다. 아무리 애써도 종종 오류를 범하게 된다. 게다가 매우 심오해서 알 수 없는 문제들을 모른다는 이유로 장차 다가올 심판 날에 추궁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들을 놓고 벌이는 토론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우리에게 정말 유익하고 필요한 것들은 무시하면서 단지 호기심만 자극하거나 해로울 수도 있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 되겠는가? 사실 우리는 눈이 있어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렘 5:21)?
(민 12: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시 94:12)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렘 5:21) "우준하여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2 왜 종種이니 속屬이니 하는 철학적 용어에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가? 영원한 말씀의 가르침을 받는 우리는 수많은 이론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있다. 이 말씀으로부터 만물이 지음을 받았고, 만물이 그 말씀을 증거하며, 우리에게 이 말씀하시는 분도 모든 것의 처음이신 그분, 진리되신 말씀이시다. 이 말씀이 없이는 모든 것을 올바로 이해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 그분께는 만물이 하나이므로 만물을 그 한 분께 돌리고, 그 한 분 안에서 만물을 보는 사람은 마음이 요동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평안 가운데 거하게 된다.
오, 진리 되신 하나님(요 14:6), 영원한 사랑으로 주님과 하나로 연합하게 하소서(렘 31:3)! 내가 읽고 듣는 많은 것들로 인해 나는 지쳐 있나이다. 그러나 오직 주만이 내가 바라는 분이며 모든 것이 주님 안에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모든 선생들과 피조물들이 잠잠하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이 나에게 말씀하시옵소서.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렘 31:3)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3. 주님과 연합하면 할수록, 내면 세계가 단순해지면 단순해질수록 더 많은 수고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주님의 위대하심을 이해할 수 있다. 하늘로부터 내리는 계시의 조명과 지혜를 받기 때문이다(마 11:25).
순수하고 진실하며 변함이 없은 정신의 소유자는 여러 가지 일에 시달려도 흔들리거나 미혹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정욕보다 우리의 앞길을 더 가로막고 훼방하는 것은 없다.
선하고 경건한 사람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밖으로 드러내 놓고 남들에게 알리기보다는 스스로 조용히 계획하고 실행하며, 쓸데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올바른 이성으로 판단하여 일을 진행한다.
자기 자신과 벌이는 싸움보다 더 격렬한 싸움은 없다. 자신을 극복하고 이겨내어 더욱 강해지고 더 나아지도록 날마다 성장하여 거룩한 삶을 사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마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4.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불완전 요소를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또 우리가 명확히 알고 있다는 것에도 뭔가 불명확한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에도 깊은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보잘것없다는 겸손한 마음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배우는 일 자체를 비난하거나 아주 사소한 지식이라도 함부로 취급할 수 없는 것은, 지식 자체는 선한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항상 선한 양심과 덕스러운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올바르게 살려는 노력보다는 지식을 쌓는 데만 열심이어서 미혹에 빠지거나 열매가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5 만일 풀기 어려운 문제를 놓고 벌이는 토론만큼이나 열심을 가지고 악한 행실을 뿌리 뽑는 데 집중한다면, 우리 가운데 많은 사악함도 없을 것이며 듣기에 좋지 않은 소문들도 생기지 않을 것이고 수련 생활의 나태함도 없을 것이다. 확실히 심판 날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보다는 행실이 어떠했는지 물으실 것이며, 얼마나 토론을 잘했는지보다는 얼마나 경건한 삶을 살았는지 물으실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쌓은 학문적 업적으로 유명했던 학자들이 지금은 다 어디에 있는가? 또한 오늘날 생존해 있는 학자들은 선배 학자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었는지 모르나 지금은 이름조차 거론되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6 아, 이 세상의 영화가 얼마나 빨리 지나가 버리는가(요일 2:17)! 학자들이 스스로 쌓은 학문만큼만 선하게 살 수 있었다면, 그들의 연구와 강의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선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소홀히 하면서 헛된 학문에 매달려 살다가 죽어가고 있는가! 그들은 겸손하기보다는 명예를 원하여 생전에 지적 활동에 전념했지만(롬 1:21) 결국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지 않은가?
사랑이 풍부한 사람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다. 자신을 그다지 중요한 인물로 여기지 않고, 가장 큰 자랑거리조차도 하찮은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다. 이 땅의 모든 것을 배설물같이 여김으로 그리스도를 얻는 사람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다(빌 3:8). 그러므로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참으로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일 것이다.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11월 6일)


제 4 장 분별력 있는 행함

1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말과 생각을 모두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하나 신중하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을 믿으려 하고 험담하는 것을 좋아하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온전한 사람은 자기가 듣는 모든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원래 인간의 본성이 악하며(창 8:21) 사람들은 말에 실수가 많아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창 8:21) "…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
2 행동할 때에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잠 19:2) 자기 의견만을 끝까지 고집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지혜이다. 또한 들은 것을 모두 그대로 믿지 않는 것, 그것을 남에게 곧장 옮기지 않는 것(잠 17:9)도 지혜이다.
자신의 생각을 접어두고 지혜롭고 정직한 사람에게 가서 조언을 구하며 존경하는 사람에게 교훈을 구하라(잠 12:15).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삶은 우리를 지혜롭게 하며 많은 지식을 쌓게 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겸손할수록 하나님을 더욱 따를 수 있게 되며,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마음에 큰 평화를 얻게 된다.
(잠 19:2) "지식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그릇하느니라"
(잠 17: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잠 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제 5 장 성경 읽기

1 우리는 성경에서 진리를 찾는 것이지 화려한 미사여구나 설득력 있는 금언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것이 기록된 계시의 정신을 따라서 읽어야 한다(롬 15:4).
성경은 고상한 언어의 맛을 보기 위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에 유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연구해야 한다. 또한 성경은 고상하고 심오할 뿐 아니라 단순하면서도 경건한 책이라는 것을 알고 읽어야 한다. 저자의 명성에 관계없이 단지 책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려는 열정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전 2:4). 글을 쓴 저자가 누구인가에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그가 말하려는 것에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롬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고전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2 사람은 태어나서 결국 이 세상을 떠나지만 주님의 신실하심은 영원하다(시 117:2).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다앙한 방법으로 말씀하시지만(히 1:1) 사람들을 차별하시지는 않는다(롬 2:11). 우리의 헛된 호기심이 성경을 읽을 때 오히려 해가 되기도 한다. 별다른 의심없이 성경을 멈추지 말고 그냥 죽 읽어나가면 될 것을, 우리는 가끔 읽는 것을 멈추고 토론이나 변론에 빠져들곤 한다.
성경에서 유익한 것을 얻고자 한다면, 겸손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절대로 성경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 성경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물으면서 인내를 가지고 조용히 성경 기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그 말씀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잠 1:6, 전 12:9).
(시 117:2)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히 1:1)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롬 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잠 1:6)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奧妙)한 말을 깨달으리라"
(전 12:9) "전도자가 지혜로움으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묵상하고 궁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11월 7일)


제 6 장 무질서한 욕망

1 무언가를 지나치게 원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에 불만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래서 자만심과 탐욕이 있는 사람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은 화목하며 평화 속에 살게 된다.
스스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쉽게 유혹을 받아 사소한 일에도 넘어지고 만다. 영적으로 연약하여 자신을 육신에 내주고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세상적인 욕망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은 욕망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면서도 어쩌다 벗어나게 되면 괴로워하고, 누군가가 자기의 말에 반대할 때 곧잘 화를 낸다.
2 그러나 그들도 자신의 쾌락과 정욕에 넘어가고 나면 곧 양심의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는 자기가 구하는 평화를 얻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정욕에 자신을 내맡길 때가 아니라 오히려 강하게 맞서 싸워 절제할 때 얻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육신의 욕망에 내주거나 세상일에 얽매인 사람은 평화를 얻을 수 없다. 마음의 평화는 영적 생활에 열심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제 7 장 헛된 소망과 교만

1 사람이나 다른 피조물을 믿는 사람은 어릭석은 사람이다(렘 17:5).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과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로 여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리고 힘을 다해 행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한 의도를 도우실 것이다. 자기 자신의 지식이나 어떤 사람의 지혜도 믿지 말고 하나님의 은총만 의지하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도우시는 분이다(약 4:6).
(렘 17:5)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2 자신의 많은 재물을 자랑하지 말고(렘 9:23), 권력이 있는 친구가 있다고 자랑하지 말며, 오직 하나님만을 자랑하라(고전 1:31). 하나님은 모든 것, 심지어 자신까지 기꺼이 우리에게 내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빼어난 외모나 강인한 육체도 자랑하지 말라. 육체는 조그만 병만 앓게 되어도 훼손될 수 있으며, 모든 선척적인 지능이나 재능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도록 자기의 지능과 재능을 자랑하지 말라.
(렘 9: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고전 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3 자신을 남들보다 더 나은 존재로 여기지 않도록 하라. 사람의 속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당신이 남들보다 더 못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베푼 선행에 대해서도 자랑하지 말라. 하나님의 판단은 인간들의 판단과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좋은 것이 하나님께는 기쁨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자신에게서 어떤 좋은 점이 발견되거든 남들은 더 좋은 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겸손함을 잃지 않도록 하라. 자신이 모든 사람들보다 가장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해가 되지 않지만 모든 사람들보다 자신이 가장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게 해가 될 수 있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마음의 평화가 깃들지만, 교만한 사람에게는 시기와 질투와 분노만 가득하게 될 뿐이다.


(11월 8일)


제 8 장 올바른 교제

1 속마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과는 당신의 문제를 함께 나누어도 괜찮다(잠 25:9). 또한 나이 어린 사람들이나 낯선 사람들과 너무 마음을 터놓고 어울려 교제하는 것은 삼가라. 부자에게 아첨하지 말고 사람들이 귀하게 떠받드는 고관대작과도 가깝게 지내려고 애쓰지 말라(잠 25:6).
다만 겸손하고 순수한 사람, 경건하고 신앙이 깊은 사람과 교제하도록 하라. 그들과 함께 신앙 성장에 도움이 되는 대화를 나누도록 하라. 이성과는 친하게 지내지 않도록 조심하고, 다만 선한 여성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라(외경, 집회서 9:1-13). 사람들과의 사귐에 노력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사귐에만 열중하라.
(잠 25:9)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을 누설하지 말라"
(잠 25:6)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 하지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라"
(외경, 집회서 9:1-13) "사랑하는 아내를 질투하지 말아라. 너의 아내가 너를 해칠 생각을 품게 되리라. 그러나 아내에게 너무 빠지지도 말아라. 네가 오히려 밟힐지도 모른다. 창녀를 가까이하지 말아라. 그 여자의 흘림에 넘어갈까 두렵다. 기생집에 발길을 삼가라. 그 여자의 계략에 넘어갈까 두렵다. 처녀에게 눈을 팔지 말아라. 여자와 함께 벌을 받을까 두렵다. 창녀들에게 네 마음을 주지 말아라. 네 재산을 잃을까 두렵다. 길거리에서 한눈을 팔지 말 것이요, 구석진 골목에서 서성거리지 말아라. 예쁜 여자를 너무 바라보지 말고 남의 아내의 아름다움에 혹하지 말아라. 정욕이 불길처럼 타올라, 여자의 미모 때문에 신세를 망친 사람이 많다. 유부녀와 자리를 같이하지 말고 또한 술마실 기회도 갖지 말아라. 그 여자의 매력에 홀려 욕정이 멸망으로 치달을까 두렵다. 옛 친구를 버리지 말아라. 새로 사귄 친구는 옛 친구만 못하다. 새 친구는 새 술과 같으니, 묵은 술이라야 제 맛이 난다. 악인의 성공을 부러워하지 말아라. 그의 말로가 어떠할 것인지를 너는 모른다. 악인들이 즐기는 것을 좋아하지 말아라. 그들이 죽기 전에 반드시 벌받으리라는 것을 알아두어라. 너를 죽일 권한을 가진 세도가를 멀리하여라. 그러면 그의 손에 죽을 염려가 없다. 만일 그에게 가까이 가게 되거든 네 몸을 사려라. 자칫하면 그가 네 목숨을 앗아갈지도 모른다. 너는 함정 가운데를 걷고 있으며 적이 노리는 성벽 위를 걷는 것과 같다".
2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의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만, 굳이 그들 모두와 자주 만나면서 깊이 사귀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평판은 꽤 좋은데, 막상 만나보면 들리는 말과 다른 경우가 종종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교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만약 우리가 불미스러운 행동을 한다든지 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정말 불쾌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 9 장 순종

1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 가기보다는 더 나은 누군가에게 순종하며 사는 것이 참으로 현명하다. 또한 남을 다스리기보다는 남에게 순종하며 사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순종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가 곧 자기의 삶에 불만을 느끼고 불평을 늘어놓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마음을 다하여 순종하기 전에는 결코 영적인 자유를 얻을 수 없다.
어디를 가든지 자신보다 더 나은 분의 권위에 겸손하게 순복하지 않는한 그 어느 곳에서도 안식을 찾기는 힘들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곳에 가면 더 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곳에 가보면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뜻대로 하고 싶어하고 자기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길 원한다면,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마음의 참 평안을 얻도록 해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해 다 알고 있는 현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에만 얽매이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들어줄 줄 알아야 한다. 설령 자신의 생각이 옳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부디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의 뜻을 따르면 더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 다른 사람에게 충고를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충고와 의견을 듣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잠 12:15). 그러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의견이 다 괜찮은 경우에도 어떤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르는 것을 거부하는 때가 종종 있음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 왜곡된 자만심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증거이다.
(잠 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11월 9일)


제 10 장 말의 절제

1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과 함께 모이는 것을 피하라. 비록 좋은 의도라 해도 세상사에 관하여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은 오히려 커다란 방해가 될 수 있다. 우리를 빠르게 타락시키거나 하찮은 것에 미혹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 모인 그 자리에서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또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 자리를 피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종종 후회하곤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매번 침묵으로 돌아갈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사람들과 지껄여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일까? 아마도 대화를 하는 동안 서로에게서 위안을 얻고 흐트러진 마음을 추슬러보려는 심정에서일 것이다. 특히 우리는 자기가 가장 바라는 것이나 가장 원치 않는 것에 대하여 말하거나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2 하지만 그러한 것은 전혀 무의미하다. 우리가 말을 해서 얻는 위안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적 위로에 커다란 방해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늘 깨어 기도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마 26:41).
말을 해도 좋은 경우는, 영적 생활에 도움을 주는 말을 할 때이다(엡 4:29). 그러나 영적 성장에 게으르거나 영적 생활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좋지 못한 습관에 빠지면, 자신의 말을 절제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 특별히 하나님 안에서 연합한 사람들이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영적인 것을 나누는 신령한 대화야말로 우리의 영적 성장에 커다란 도움을 줄 것이다.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 성경 : 로마서 8장 35절-39절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제 11 장 역경의 유익함

1. 재난이나 역경은 때로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기도 한다. 그런 고난들은 자신의 내면 세계를 바라보게 하고, 우리가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과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도 한다.
때때로 최선을 다해 좋은 뜻으로 하는 우리의 행위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반대를 하거나 나쁘게 생각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때조차 그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자만에 빠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으며 하찮게 여길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로 향하여 그분의 판단을 구하게 된다. 그분은 우리의 깊은 속마음까지도 감찰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시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2. 그러므로 어떤 역경에 처할지라도 우리의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만 두고, 자신을 하나님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세워야 한다. 사람들의 위로나 격려를 구해서는 안 된다. 선한 사람이 악한 생각으로 인하여 유혹을 받아 고난이나 고통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절감하게 된다(요 15:5).
이러한 고통 가운데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한숨과 신음으로밖에 기도드릴 수가 없고, 이런 자신의 삶에 지쳐서 차라리 죽어 예수님과 함께 살 수 있기만을 소원하게 되기도한다(빌 1:23). 온전한 안위와 큰 평화는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도 바로 이 고난의 때이다.
(빌 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히 6:19)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11월 10일)

■ 성경 : 야고보서 1장 12절-15절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제 12 장 유혹을 물리치는 법

1.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시험과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성경에서 욥은 “세상 사람들의 삶은 고난의 삶이 아닌가?”(욥 7:1)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유혹을 삼가 조심하고 지금도 자지 않고 호시탐탐 넘어뜨릴 자를 찾아 두루 돌아다니는 악한 영에 대항하여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한다(벧전 5:8).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완전하고 거룩한 사람은 없으며, 유혹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욥 7:1)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그 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2. 시험은 괴롭고 무거운 짐과 같으나, 종종 매우 유익한 것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이 시험을 통해 겸손해지고 정결해지며 훈련이 되기 때문이다. 옛 성인들도 모두 시험과 유혹을 받은 바 있으며, 그 시험을 극복함으로 큰 유익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시험을 견뎌내지 못했던 자들은 타락하여 파멸의 길로 가고 말았다. 이 세상에는 시험과 유혹이 전혀 없을 정도로 거룩한 영적 질서도 없고, 시험과 유혹이 닿지 않을 만큼 아주 은밀한 장소도 없다.
3.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어느 누구도 유혹이나 시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이미 우리 속에 유혹의 요소가 들어 있다(약 1:14). 하나의 유혹이나 시험이 지나가면 또다른 것이 찾아들고 우리에게 고통스런 일들이 끊이지 않게 되는 데 이것은 하나님이 태초에 주신 복을 우리가 상실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혹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더 깊은 유혹에 빠지고 만다. 유혹은 도망간다고 해서 극복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겸손한 자세로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맞설 때 우리 안에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힘이 생겨난다.
(약 1:14)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기 때문입니다(현대인의 성경)
4. 단지 유혹을 통해 드러나는 표면적 악습만 제거할 뿐 유혹이 미치는 내면의 죄악성을 근본적으로 뿌리째 뽑아내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는 유익이 거의 없게 된다. 유혹은 그만큼 더 빨리 다시 찾아오게 되고, 이에 대처하는 그의 모습은 전보다 더욱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혹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끈기와 인내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조금씩 조금씩 유혹을 이겨나가라. 유혹이 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계속해서 충고와 자문을 구하라.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유혹에 넘어갔다면 그를 비난하거나 선한 길로 인도하려는 욕심으로 강하게 다루지 말고 오히려 당신 자신이 위안을 받고자 하는 대로 그에게 자상하게 대하며 위안과 용기를 주라.
5. 모든 사악한 시험은 경솔한 마음과 하나님을 올바로 신뢰하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마치 키 없는 배가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밀려가듯 게으르고 목적 의식이 희박한 사람은 많은 유혹에 시달리게 되어 있다. 그리고 단단한 철이 불을 통과하듯이 의인은 시험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외경, 집회서 31:26). 우리는 과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때가 많다. 그러나 시험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된다.
유혹이 오면 초기부터 자신을 단단히 방어해야 한다. 유혹이 마음의 문을 처음 두드렸을 때 그 유혹을 마음의 문안으로 조금이라도 들이지 말고 문밖에 세워둘 수 있으면, 그 유혹을 물리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그래서 오비디우스는『사랑치료법』에서 이렇게 말했다.
“초기에 대처하라. 시간이 흘러 병이 악화되면 약을 쓰기에는 너무 늦어 지는 법이다.”
유혹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생각으로 마음에 찾아든다. 마음은 상상의 날개를 펴고 그 생각을 조금씩 키우다 마침내 그럴 둣한 모양을 갖추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생각은 아주 강한 매력을 풍기면서 유혹하여 결국 우리의 의지는 생각하는 대로 따라가고 만다. 이 사악한 적에게 처음부터 맞서지 않으면 이렇게 단계적으로 접근하여 우리 마음속을 지배하게 된다. 저항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우리는 더 깊은 상처를 받게 되며, 우리의 적은 더욱 커져서 제어할 수 없는 강한 힘을 갖게 된다.
(외경, 집회서 31:26) "불이 쇠의 강도를 알아보듯이, 술은 잘난 체 떠드는 자들의 마음을 알아본다."
6. 어떤 사람은 신앙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커다란 유혹을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생애의 마지막에 가서야 유혹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유혹에 시달린다. 만약 가볍게 시험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에 의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형편과 사정을 아시고 그들 각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보응을 생각하여 역사하지만, 특별히 그의 택하신 모든 백성들은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다.
7. 그러므로 시험과 유혹을 받을 때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만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기도하면서 모든 시험에서 건져 주실 것을 구해야 한다. 사도 바울이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모든 시험과 유혹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그의 도우심을 구하라(외경, 유딧 8:17).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해 주시고 높여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눅 1:52).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외경, 유딧 8:17)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기다리면서 우리를 도와주십사고 그분에게 간청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간청하는 소리를 좋게 생각하신다면 들어주실 것입니다."
(눅 1:52)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8. 영적으로 성장한 증거는 시험과 유혹을 통해 드러난다. 이러한 시험과 유혹을 끝까지 잘 견딘 후에 우리는 커다란 유익을 얻고 자신을 증명해 보일 수 있게 된다. 시험 외에 다른 것으로는 사람들의 신앙 상태를 알 수가 없다.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으면서 헌신적이고 열성적으로 행동한다면 그 행동은 조금도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이 못 된다. 하지만 역경 속에서도 인내하며 견뎌내면 커다란 영적 성장을 맛보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커다란 시험은 잘 견뎌내면서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시험들에는 잘 넘어지는 것을 본다. 이것은 자신도 아마 느꼈겠지만, 하찮은 것에도 넘어지는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겸손해지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숨겨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시험과 유혹을 통해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려는 사랑의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11월 11일)

■ 성경 : 마태 7장 1절-5절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제 13 장 성급한 판단을 피함

1. 자신에게만 눈을 돌리고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하여 판단하지 않도록 하라(마 7:1).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을 뿐 아니라 종종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하며 자칫 자신을 죄악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마 12:25). 그러나 늘 자신을 판단하고 반성하면 큰 유익이 된다.
사람에게는 어떤 감정이나 선입관으로 다른 사람을 보는 습성이 있다. 이것은 결국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진실과는 거리가 멀기가 쉽다. 만일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되신다면, 비록 우리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그렇게 쉽게 실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 12:25)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 남을 판단할 때에 흔히 어떤 외적인 요소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 진짜 기준은 마음속에 감추어놓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행위 안에서 은밀히 이로운 것을 찾아내려고 하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한다. 그들은 모든 일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잘 되어갈 때는 만족해하며 평안을 갖는 것 같지만, 일이 조금씩 잘못되어가기 시작하면 곧 불안해지고 우울해한다. 한편 생각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종종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 사이에 다툼이 생기는데 이러한 다툼은 ‘경건한 사람들’사이에도 일어나고 있다.
3. 오래된 습관을 벗어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앞선 생각에는 쉽게 이끌려 가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 자신의 이성과 논리만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의지하지 않으면 영적인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이며, 설령 얻는다 해도 아주 조금씩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전한 복종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되 열심을 다해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제 14 장 사랑으로 행함

1.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악행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명분으로도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 때때로 어떤 선행을 베푸는 것을 그대로 놔두고 보다 필요를 원하는 데에 선한 일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에 처음의 그 선행을 중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은 선행으로 바꾼 것이다.
무슨 일이든 마음에 사랑이 없이 겉으로만 드러내는 행위는 가치가 없지만(고전 13:3),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행위라 하더라도 사랑을 가지고 한 행위는 가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한 행위에 가치를 두실 뿐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으신다. 진심으로 사랑을 많이 한 사람이 많은 일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2. 사랑이 많은 사람일수록 선행을 많이 하며, 자기의 뜻대로 선행을 한 것이 아니라 남들의 유익을 위해서 일한 사람이 선행을 많이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속적인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때때로 사랑을 베푼 것으로 여겨지는 행위들이 자신의 이익이나 기호 또는 보상에 대한 기대 등이 동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3. 참되고 온전한 사랑을 소유한 사람은 그 어떤 것에서도 자기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오직 모든 선행에서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기를 구한다. 참으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고 그는 어떤 인간적인 기쁨이나 행복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복을 누리기를 소원한다(고전 13:4).
그는 모든 선한 일을 사람들의 자랑으로 돌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으며, 모든 성도들이 그분 안에서만 완전한 기쁨과 안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참된 사랑의 불씨를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헛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고전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11월 12일)


제 15 장 침묵과 고독을 사랑함

1 자기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늘 상고하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사소하고 시시한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단순히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독서하지 말며, 영혼의 회개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책을 읽으십시오.
만일 한담이나 뜬소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쓸데없이 남을 만나러 다니는 것을 자제할 수 있다면, 당신은 선한 일에 대한 생각과 경건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습니다. 위대한 성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과의 세속적인 교제를 피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는 것을 택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2 세네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밖에서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 어울릴수록 나 자신이 그전보다 더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을 느낍니다.”
말을 많이 하게 될 때 이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도록 절제하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차라리 온전한 침묵을 지키는 것이 쉽습니다. 집 밖 공공장소에서 누군가의 보호 아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 보다는 집에서 혼자 있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영적 성장을 이루기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예수님처럼 대중들에게서 빠져나와 한적한 곳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막 6:31, 눅 5:16). 침묵을 지키며 혼자 집에 있기를 참으로 원하는 자가 대중 앞에 제대로 나설 수 있습니다. 기꺼이 침묵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대중 앞에서 말에 실수가 없습니다(전 3:7). 기꺼이 남의 말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남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고, 남의 말을 따를 줄 아는 자가 남을 제대로 지도할 수 있습니다.
(막 6: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눅 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전 3:7)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3. 선한 양심을 잃지 않는 한 절대로 잘못되는 법은 없습니다(고후 1:12, 행 23:1). 옛 성도들이 악한 세력으로부터 안전한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했던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함께 그들의 덕성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덜 부지런하거나 덜 겸손해도 됐던 것은 아닙니다. 사악한 자들도 자기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그들의 자만심과 억측에 의한 것으므로 결국 스스로 자기 기만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모범적인 신앙인이거나 경건한 수도자라할지라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절대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보장이 없을 것입니다.
(고후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행 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4. 세상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 사람은 지나치게 자신만만하기 때문에 실제로 가장 위험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의 유혹을 전혀 받지 않기보다는 적당히 사탄의 공격을 받아 자신이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이 세상에서 안위를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만일 이 세상에서 순간적인 쾌락을 좇지 않으며 세상의 사물에 현혹되어 살지 않게 된다면, 그 사람은 때 묻지 않은 선한 양심을 소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만일 세상의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 오직 하늘나라의 거룩할 일들과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에 유익한 일들만 생각하면서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만 둘 수 있다면, 우리는 커다란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5. 우리는 끊임없이 자복하고 통회해야 합니다. 이것을 게을리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하늘의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통회하는 마음을 갖고자 하는 자는 조용한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의 모든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시 4:4)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골방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러면 골방 밖에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다시 찾을 것입니다.
골방을 자주 찾는다면 그 곳에서 참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골방을 자주 찾지 못하면, 그 곳은 어느덧 지루하고 짜증스런 곳이 될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시작하는 처음부터 골방에 머무르는 습관을 가질 수 있다면 그 곳은 큰 기쁨을 안겨 주는 굉장히 친숙한 곳이 될 것입니다.
(시 4: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6. 경건한 신앙인이 고요한 침묵 속에서 성경을 읽을 때 그 속에 감춰진 신비스런 비밀들을 하나씩 깨달아 알게 되고, 때로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서(시 6:6) 자신이 더욱 정결해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소란스런 세상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창조주 하나님과는 더 가까워집니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떠나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使者인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찾아와 주십니다.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으면서 세상에서 드러나는 공로를 쌓는 것보다는 자기의 영혼을 돌보면서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편이 더 낫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또한 남들은 어떻게 생활을 하는가 관찰하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도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만합니다.
(시 6:6)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왜 가져서는 안 되는 것들을 소유하려고 애쓰십니까?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느리라”(요일 2:17). 육체적 욕망은 그것을 채우기 위해 당신을 이리저리 헤매게 만들다가 결국 그 방황을 끝내는 순간, 양심의 가책과 마음의 상처만 남겨둡니다.
육체적 쾌락은 그것을 위해 떠날 때는 좋은 것 같지만 돌아올 때는 깊은 슬픔에 잠기게 하므로, 쾌락으로 즐기며 보낸 밤은 비통하고 우울한 아침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잠 14:13). 모든 육체적 쾌락은 다 그렇습니다. 그 시작은 매우 즐거운 것 같으나 결국은 우리를 찌르고 물어뜯어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잠 23:32). 지금 여기에서 볼 수 없는 그 무엇을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전 1:10)? 하늘과 땅과 모든 만물의 요소들이 지금 이곳에 다 펼쳐져 있습니다. 여기에 없어 보이는 것들도 결국은 지금 여기에 있는 모든 것들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잠 14:13)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잠 23:32)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전 1: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8. 해 아래 헛되지 않고 영원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전 2:11)? 당신은 혹시 만족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 만족을 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세상의 모든 만물을 한눈에 다 볼 수 있다 한들, 그것이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눈을 들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죄악과 연약함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헛된 것들은 헛된 사람에게 맡겨두고 당신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들만 충실히 감당해 나가십시오.
골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마 6:6), 사랑하는 예수님을 찾으십시오. 그분과 함께 그 곳에 오래 거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큰 평화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소란스런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평화는 계속될 것이며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헛된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때는 마음의 평안을 잃게 될 것입니다.
(전 2:11)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11월 13일)


■ 성경 : 베드로후서 3장 8절-9절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제 16 장 참회하는 마음

1.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잠 19:23). 게으르지 말고 당신의 모든 감각을 제어하여 어리석은 환락에 빠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진정으로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경건에 이를 것입니다. 참회는 많은 선행의 길로 인도하지만 방탕은 빠르게 파멸의 길로 이르게 합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는 온전한 만족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 세상의 나그네이며, 우리 영혼이 많은 악한 세력에 둘러싸여 있는 존재임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을 때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잠 19:2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
2. 마음이 들떠 있어서 자신의 허물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된다면, 자신의 영혼이 병들어가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통회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순간에도 무감각해져서 그냥 웃어넘겨 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 자유나 참 기쁨은 언제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선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할 때 가능합니다.
온갖 산만한 생각들을 다잡고 온전히 마음을 모아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자기 양심을 더럽게 하거나 부패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도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가지고 실천하도록 하십시오.
나쁜 옛 습관은 좋은 습관을 가짐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일을 참견하지 않고 그들의 소견대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할 수 있다면, 그들 역시 당신이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고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3 다른 사람들, 특히 윗사람의 일에 참견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언제나 차분하게 자신에게 눈을 돌리십시오. 친구들의 결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