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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뉴욕교회에서 구덕교회를 그리워하며 !!
작성자 신상영 작성일 2009-02-04 09:41:09
조회수 1,648 분류 일반 
존경하는 목사님과 사랑하는 구덕교회 성도여러분,
약간 늦었지만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고 하나님의 은총 입으시기를 먼 카나다 에서 신상영 (집사)이 간절히 바랍니다.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 그래도 지금도 주저하긴 하면서, 이 글을 보냅니다. 
저는 1월 5일 카나다로 학생들 지도 차 왔으며 3월 1일 귀국합니다.  작년 7월 30일 필리핀에서 올린 부족한 저의 감동과 은혜의 글을 많은 분들이 읽어셔서 저도 놀랐습니다.  좋은 것은 함께 나누어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여 감히 이 내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 설날을 뉴욕에 계시는 몸이 편찮은 누님과 오랜만에 함께 보냈습니다. 25일 주일 예배를 뉴욕교회에서, 몸이 불편한 누님을 대신하여, 드렸습니다.  그날의 설교가 너무나 마음속 깊게 다가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누가복음 10: 25-37 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A Good Samaritan)의 비유입니다.
이 내용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름다운 이웃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날의 설교 초점은 약간 다른 쪽으로 맞추어 졌습니다.
잘 아시는 내용이지만 간단한 예입니다.
어떤 율법사( an expert in the law )가 예수님을 시험해보기 위해 ‘영생을 얻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답하지 않고 ‘성경(in the Law)에는 무엇이라고 쓰여 있으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며 되묻습니다.
율법사답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 마음과 정성과 온 힘과 뜻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신명기 6장),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레위기 19장)’ 라고 완벽한 답을 내립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도 감탄의 말로 ‘ 그대는 정확한 답을 하였소, 가서 그대도 이 같이하면 살 것이요’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율법사는 자가 자신을 더욱 정당화시키기 위해 다시 ‘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 어려울 것 같았으나) 여러분들이 너무나도 잘 아시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줍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던 중 강도들(robbers)을 만나 옷을 벗겼고, 두들겨 맞았으며 반죽음(half dead)의 상태로 내던져집니다.
한 제사장(a priest)이 우연히도 같은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못 본척하며 다른 쪽 길 로 지나갑니다.  그런데 또 어떤 레위인이 그곳에 와서 그를 보았을 때 제사장과 같은 방법으로 다른 쪽 길로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죽을 수밖에 다른 살길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사마리아 사람(a Samaritan)이 여행을 하던 중 그 사람이 쓰러져있는 곳에 도착합니다.  그를 보았을 때 그에게 동정을 느껴 그에게 다가가 그의 상처를 붕대로 감아주고 기름과 포도주(oil and wine)를 뿌려줍니다(감염예방을 위해).
그런 후 자기 자신의 당나귀에 그를 태우고 여관으로 가서 그날 밤을 그와 함께 지새우며 또 다시 돌보아줍니다.
다음날 아침 은전 두 데나리온(당시에 거금인 것 같습니다)을 주면서 여관 주인에게 이 사람을 잘 돌보아주고 내가 돌아 올 때에 혹시 추가 비용이 들었다면 충분히 지불 할 것 을 약속한후 길을 떠납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 예수님은 다시 그 율법사에게 ‘이 세 사람 중에 그대는 누가 강도당한 사람에게 이웃이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묻습니다.
그의 대답은 ‘ 그 강도당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이 진정한 이웃입니다’ 라고 답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그대도 그와 같이 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를 들려준 후 예수님과 제자들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있는 마을에 이르러 그녀들의 집을 방문합니다)

위의 내용은 우리들 모든 성도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성경 내용입니다.  이 비유로 인하여 항상 나쁜 인상을 받았던 사마리아 인들이 착한 사마리아 인으로 바뀌게 됩니다.  ‘선한 이웃’이 되자 라는 뜻으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날의 설교는 우리성도들의 만남 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세 종류의 만남이 있습니다.
첫째의 만남은 한 사람과 강도들의 만남입니다.  이런 경우의 만남은 원수와도 같은 만남입니다.  차라리 만나지 않은 것이 나은 것입니다.(우리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만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의 만남은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당시 가장 교양 있고 사회의 모범이 되는 고위층인데도 이웃의 고통을 못 본체하며 고개를 돌리고 지나쳐버린 만남입니다.  이런 만남은 성도들의 어려움은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무관심의 만남입니다.(우리교회에도 이런 만남처럼 서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남의 어려움은 나와는 아무 관계없으며 나 혼자 굳건한 신앙심으로 자기자시만 생각하는 성도는 없어야 합니다)
세 번째의 만남은 반죽음을 당한 이 사람에게 당연히 모른체하고 지나가도 별 비난을 받지  않을 사마리아 사람인데도 위와 같이 온 정성을 쏟으며 하루의 일정도 포기하고 같은 여관 방에서 밤 새워 간호했으며 엄청난 금전적 손실도 마다하지 않은 비천한 사마리아인과의 만남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와 같이 강도당한 사람처럼 큰 은혜를 입은 성도님들이 있을 것이며 사마리아인처럼 남 몰래 큰 사랑과 도움을 베푼 분도 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강도당한 사람의 미래가 어찌되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예상하는 것처럼 건강을 되찾아 큰 성공을 했다면 반드시 그 사마리아인이 베푼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며 어떤 방법으로든지 되갚는 노력을 해야 된다는 점입니다.  너무나 많은 분 들이 은혜를 받을려고 하지만 그 고마움을 갚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 흘림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크고도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혹시 어느 성도님의 인도로 구덕교회에 오셔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면 그 인도자에게 보답하는 관계를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는 분들을 저는 알고 있으며 그분들을 존경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중에 우리 모두는 이런 만남으로 이곳 구덕교회에 속한 성도들 입니다 )
이날의 설교 중 목사님의 마지막 말씀이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만일 그 주변에 누군가가 보고 있었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는 말입니다.
춥고 눈 덮인 먼 카나다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9년 2월3일 신 상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