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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내를 잃은 아이 아빠의 편지
작성자 주은혜 작성일 2007-05-01 06:40:58
조회수 1,649 분류  

아내를 잃은지 4 년된 한 가정에서 일어난 어느 아버지의 편지입니다. (퍼옴)
(가정사역을 하시는 분께 보낸 아버지의 편지)

(첫번째 편지)

“아내가 어이 없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언 4년 지금도 아내의 자리는 너무도 크기만 합니다. 스스로 밥 한끼 끊여먹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남편을 두고 떠난 심정이야 오죽 하겠습니까만,
나는 나 데로 아이에게 엄마 몫 까지 못 한게 늘 가슴이 아프기만 합니다.
언젠가 출장으로 인해서 아이에게 아침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출근준비만 부랴부랴 하고 새벽부터 집을 나섰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날 지어놓은 밥이 조금 밥솥에 남아 있기에 계란 찜을 데어 놓고 아직 잠이 덜 깬 아이에게 대강 설명을 하고 출장지로 내려 갔습니다.
그러나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있나요. 그저 걱정이 되어 몇 번이나 전화로 아이의 아침을 챙기느라 일도 제대로 못 본 것 같습니다.
출장을 다녀온 바로 그날 저녁 8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이와 간단한 인사를 한 뒤에 아이의 걱정은 뒤로한 채 방으로 들어와서 양복 상의를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침대에 대자로 누웠습니다.
그 순간 푹 하는 소리를 내며 빨간 양념 국과 손가락만한 라면이 침대와 이불에 퍼지는것이었습니다.
펄펄 끊는 컵 라면이 이불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 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를 무작정 불러내서 옷걸이를 집어 들고 아이의 장딴지와 엉덩이를 마구 때렸답니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이불은 누가 빨라고 장난은 쳐 하고 마구 때렸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런 말 안 했을 텐데, 긴장 했던 탓으로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의 울음 삭힌 몇 마디가 나의 매든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들의 얘기로는 밥솥에 있던 밥을 아침에 다 먹고 점심은 유치원에서 먹고 다시 저녁때가 되어도 아빠가 오시지 않아서 마침 싱크대 서랍에 있던 컵 라면 찾아 냈다는 것이랍니다.
가스렌즈의 불은 함부로 켜서는 안된 다는 아빠의 말씀 말이 생각나서 보일러 온도로 불을 올린 후에 데워진 물을 컵 라면에 붓고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한 개는 출장간 아빠에게 줄려고 했는데,
아빠가 올 시간이 되어도 오시지 않아 라면이 식을까 봐 침대의 이불 속에 넣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럼 왜 그런 말을 안 했냐고 물었더니, 제 따네 출장 다녀온 아빠가 반가운 나머지 깜빡 잊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아들 앞에 눈물을 보이는 것이 싫어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 저는 수돗물을 틀어놓고 엉엉 소리 내 울었습니다.
한참 이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우는 아이 다리에 약을 발라주고 잠을 재웠습니다.
라면으로 더러워진 침대와 이불을 치우고 아이 방을 열어보니 얼마나 아팠으면 잠자리 속에서도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아내가 떠나고 난 자리가 너무 크기만 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는 그저 오랫동안 문에 머리를 박고 서 있어야 했습니다.”

(두 번째 편지)

“아이도 나의 걱정과는 달리 귀엽게 맑게 커가는 것 같아서 아이에게 정말 고맙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나이 이제 7살 유치원을 졸업하고 내년 부터는 학교를 갑니다. 그 동안 아이에게 또 한 차례 매를 들었습니다.
어느날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그날 유치원에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떨리는 마음에 회사를 조퇴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를 찾아봤지만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이 놀이터에서 혼자 흙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화가 나 나는 아이에게 매를 들었습니다.
아이는 단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고 잘못을 빌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유치원에서 부모님을 모셔놓고 재롱 잔치를 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후에 아이는 유치원에서 글을 배웠다고 너무나도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아이는 저녁만 되면 자기 방에서 꼼짝하지 않고 뭔가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지 비록 아내가 없지만 하늘 나라에서 아이의 모습을 보고 미소 짓고 있을 생각을 하니 나는 또 다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겨울이 되고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 나올 때쯤 아이가 또 한 차례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날 회사에서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찾는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 전화는 우리동네의 우체부 아저씨였는데 우리 아이가 주소도 쓰지 않고 우표도 붙이지 않는 편지 300여 통을 우체통에 넣는 바람에 가장 바쁜 연말에 우체국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끼친다고 전화가 온 것이었습니다.
서둘러 집으로 간 나는 아이가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아이를 불러놓고 다시는 들지 않으려는 매를 또다시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이는 변명하지는 않고 잘못 했다는 소리 뿐이었습니다. 아이가 그렇게도 맞는데도 변명을 하지 않자 나는 아이를 때리는 것을 그만 두고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받아왔습니다.
편지를 가지고 온 후에 아이를 불러놓고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했냐고 물어 봤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습니다. “엄마에게 편지를 보낸 거”라고 말입니다. 순간 울컥하며 나의 눈시울이 빨개진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바로 앞에 있는 터라 아이에게 티 내지 않고 다시 물어 봤습니다. 그럼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편지를 한꺼번에 보냈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아이는 그 동안 편지를 계속 써 왔는데 우체통 편지 넣는 입구가 너무 높아서 자기의 키가 닿지 않아 써오기만 하다가 요즘 들어와 다시 재보니 우체통에 손이 닿기에 여태까지 써왔던 편지를 한꺼번에 다 넣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말을 해 줘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얼마 후에 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줬습니다.
엄마는 하늘 나라에 계시니까 다음부터는 편지를 쓰고 하늘로 올려 보내라고 말입니다.
하늘이 맑고 푸른 날 나는 그 편지를 가지고 밖으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주머니 속에서 라이터를 꺼내서 그 편지를 태우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이가 엄마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 했습니다. 나는 태우다 말고 편지 한 통을 뜯었습니다.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지난 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 잔치를 했어.
그런데 난 뭐 엄마가 없어서 가지를 않았어.
아빠가 엄마 생각날까 봐 아빠한테 얘기 안 했어. 아빠가 날 찾으려고 막 돌아다녔는데 난 일부러 아빠가 보는 앞에서 재미 있게 놀았어.
그래서 아빠가 날 마구 때렸는데도 나는 끝까지 얘기 안 했어.
나 매일 아빠가 엄마 생각나서 우는 거 본다. 그런데 이젠 엄마 생각 안나. 아니 엄마 얼굴이 생각 안나. 내 꿈에 한번만 엄마얼굴 보여줘. 알았지. 보고 싶은 사람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자면 그 사람이 꿈에 나타난다고 하던데.
엄마도 그렇게 해줄 거지. 그 편지를 읽고 또 다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도대체 아내의 빈 자리는 언제 채워질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이 자리는 나의 눈물로만 채워야 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