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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4-06-28 21:11:20
조회수
2,300
분류
일반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편116:15)
이번 주 전 세계의 집중을 끈 뉴스는 김선일 형제의 죽음입니다.
이라크에서 비참하게 참수를 당한 형제를 위해 세계와 온 국민이 애도와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의 죽음도 안타깝지만, 이라크 파병 문제와 대통령의 발언,
정부의 안이한 대처 및 국력의 약함 때문에 더욱 비통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억류된 모습을 보고 부모와 형제들이 살려달라고 호소하고, 저녁마다 시민들의 촛불시위와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참하게 죽음으로 육신의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아들을 살려 달라고 울부짖던 부모와 형제의 입장에선 너무도 안 된 일입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첫째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비참하다고 말하는데 그런중에도 그의 죽음이 복되다고
느낍니다. 누구나 한번 죽는 죽음인데 세계와 모든 국민이 애도하는 죽음을 맞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 세계가 애도하며 동정하는 죽음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많은 사람들이 묻히고자하는 곳에 묻히는 영광뿐 아니라 천국에도 들어가는 영광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의 죽음이 이라크 파병 문제와 외국서 근무하는 교민들의 권익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를 심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죽음은 한 알의
밀알이 썩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국민들에게 기독교에 대해서 좋은 의식과 함께 교회에는 중동지역의 선교에
불을 당겨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목적은 돈이 아니고 복음이었습니다. 그는 중동
선교를 위해 준비하여 한국외대 아랍어과에 다녔고, 이라크에 가서도 바그다드 한인연합
교회를 다니고, 이라크를 사랑하게 되어 기독교인인 이라크 여성과 결혼을 할 예정이었던,
비록 파송 선교사는 아니었어도 예비 선교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의 삶을 통해 많은 국민들이 선한 기독교인을 보고 새롭게 기독교를 보게 되었고,
특히 올 여름의 청소년 집회들을 통해 중동선교에 대한 많은 이들이 결단하며
헌신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한 알의 썩어진 한 알의 밀알 같은 것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그의 삶 때문에 더욱 가치 있었던 것처럼, 고 김선일 형제의 죽음도
그의 삶 때문입니다. 그가 죽고 난 후 그의 잘못된 삶이 드러났다면 그의 죽음은 그야말로
개죽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과연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들이 귀중히 여기는 죽음을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