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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시대의 사회와 문화-앨버트 벨 교수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018-03-21 11:05:30
조회수 28 분류  

신약성경을 잘 이해하려면 성경이 쓰여진 당시의 문화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 유대, 그리스, 로마 문화가 복잡 미묘하게 엵혀 있던 2000여년 전의 사회 구조, 윤리, 정치, 법률, 종교, 철학 그리고 의식주 생활 일반을 학자들의 인정한 방법으로 정확히 짚어주고 있는 책이다. 성경이나 고대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알기 쉽게 풀었으며, (흑백이지만) 풍부한 사진 자료와 고대 문헌의 잉용문들이 흥미와 공신력을 높여준다
제1장 왜 이 책이 필요한가 ?
1.본문과 상황
2.상아탑에서 교회 강단으로
3.신학과 역사
4.결론

제2장 신약의 유대적 배경
1.유대교:헬라적 유대교와 유대적 유대교
2.유대교의 구전전승
3.유대의 종교분파

제3장 로마의 통치자들
1.서론
2.로마제국
3.황제들과 신약성경
4.속주와 총독들
5.로마와 유대
6.바울과 로미인들
7.그 밖에 신약성경에 언급된 인물들
8.결론

제4장 로마법과 신약성경
1.로마에서의 '교회와 국가'
2.그리스도인들과 법: 사례 연구
3.총독의 권력
4.형사소송
5.단체에 대한 로마인의 규정
6.밀고자들
7.시민권
8.로마의 형벌 제도
9.로마의 법 이론
10.로마와 그리스도인들

제5장 그리스-로마의 종교
1.서론
2.올림포스의 열두 신
3.황제 숭배
4.이적.마술.성인
5.신탁.점성술.꿈
6.정령 숭배
7.신비 종교들
8.영지주의
9.'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제6장 그리스 -로마의 철학
1.헬라인과 철학
2.고전 철학 학파
3.헬라의 철학
4.그리스도인들과 철학

제7장 그리스-로마의 사회 구조
1.사회의 여러 계급
2.하루 일과
3.식사
4.주거와 도시생활
5.의복...

헬라인들 낮 전체를 열두 기간으로 나눈 시(時)개념을 발전시켰으나, 정작 시간 개념으로 그것을 널리 사용하게 된 것은 알렉산더 대제(주전 323년에 사망) 이후였다. 이 제도에 의하면 낮은 동일한 기간의 열두 시간으로 나누어졌다. 그러므로, 시간은 고정된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고 계절에 따라 길이가 달라질 수 있었다. 12월에는 우리의 시간 개념으로 45분이었던 것이 6월에는 75분이 되었다. 바람의 탑(Tower of the Winds)이라는 시간을 재는 정교한 기계가 많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 주기 위해 아테네에 건립되었다. 로마인들은 헬라인으로부터 이 제도를 도입해왔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스에서 측정한 위도와 경도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로마에서는 정확하게 작동하지를 않았다.

예수께서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요 11:9)라고 물으셨을 때 그분은 그리스-로마식 시간 계산법을 사용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20:3~16의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포도원 주인이 하루가 시작될 때 처음으로 일꾼들을 고용하기 시작하여 계속해서 제3시, 제6시, 제9시, 제11시에 일꾼들을 고용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이 시간은 현대의 시간 계산법으로는 얼추 오전 9시, 정오, 오후...

 펼처보기 닫기  --- pp 451~452


로마, 특히 로마의 군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또다른 동양의 신비 종교는 페르시아의 미트라(또는 미트라스)교이다. 미트라 신이 어떻게 조로아스터교의 빛의 신에서 로마의 전사와 소 도살자로 발전하게 되엇는지, 그 과정을 추적하기는 어렵다. 미트라교는 로마가 지중해 동쪽 지역을 완전히 제압하기 시작한 주전 1세기초에 처음으로 그 지역에 등장하였다. 미트라교가 주후 80년경에 로마에 상륙했다는 증거가 있다. 이 종교의 본부는 대개 사치스럽게 장식되었지만 규모는 작았다. 대개 전형적인 선술집에 그 본거지를 두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오스티아에 있는 미트라교 본부는 협소한 주거 밀집 지역의 1층 방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다. 문헌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을 고고학자들이 확증해 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미트라교는 남자만을 위한 사교이며, 입문자들은 황소의 피로 세례를 받았고, 의식으로 공동식사를 하였다는 것이다.

미트라교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은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미트라교는 불멸에 대한 열망과 사후의 행복을 충족시켜 주었다. 이러한 약속은 다른 신비 종교에 비해 훨씬 더 분명하게 표현되었...











 펼처보기 닫기  --- pp 255~258


귀족들에게는 체포와 사형 언도가 전 가문의 불명예가 되었다. 이것은 명예를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상류층에 속한 로마 시민들은 대중 앞에서는 처형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처형은 참수형이었다. 이들에게는 자살을 선택할 권한이 주어지기도 하였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바, 세네카, 루카누스, 페트로니우스 등과 같은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기회를 활용하였다. (...)

하급 계층에 속한 사람들의 경우 불행하게도 그들의 죽음의 방법은 비참하였다. "잔인하고 특이한" 처형이 허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이런 방법들을 궁리해 내었다. 학자들 중에는 고대의 기록을 너무 글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는 사람들도 있다. 황제에게 반감을 가진 작가들 중에는 그 황제의 잔인함을 과장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적잖은 문헌에 희생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즐기는 로마인들의 유희가 폭로되어 있다. 마르티알리스는 그가 처음으로 출간한 짧은 책(On the Spectacles)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경기장에서 비인간적으로 다루었는지를 묘사하였다. 한 사람이 그물에 묶인 채 황소 앞에 던져졌다....



 펼처보기 닫기  --- pp 205~207